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 같다.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바로 '돌아온 탕자'로 알려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비유인데,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비유 메시지다.
이 스토리는 너무 유명해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다.
비유의 킬포는
둘째 아들도,
첫째 아들도 아닌
바로 아버지다.
물론, 비유의 청자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기에,
맏아들의 태도를 통해 그들의 영적 상태를 고발하려는 의도가 있다.
예수님이 날리신 팩폭이다(눅 15:31-32).
세리와 죄인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비유의 핵심 의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
눅 15:20은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보여준다.
두 아들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둘째 아들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환대에 몸둘 바를 모른다.
가출했다가 전 재산 탕진하고 돌아왔건만,
(첫째 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리고 왔건만,)
아버지는 그저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뻐서 주체를 못 한다.
그리고는 컴백홈 기념으로 성대한 파티를 연다.
우릴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똑같다.
무슨 잘못을 했던 간에,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일단 돌아오면 격하게 반겨주신다.
즉,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과거를 묻고 따지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용서는 통큰 용서다. 뒤끝이 없다.
컴백홈 하기만 하면 끝난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저 아들로 보일 뿐이다.
그 아들에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으신다.
집 나간 아들, 가산탕진한 아들, 못난 아들, 정신 못차린 아들...
이런 수식어가 전혀 필요 없다. 아버지에게는 그저 소중한 자식일 뿐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셔서 곧장 아들로 받아주신다.
아들 신분이 종으로 바뀔리 없다. 둘째 아들은 아들 신분 포기하고 종이 될 각오로 들어갔는데, 이는 큰 오산이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스케일은 차원이 다르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그 기쁨만으로 축제를 벌이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컴백홈파티를 준비하고 계신다.
컴백홈,
집으로 가는 길,
너덜너덜해진 내 모습 이대로를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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