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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통 모자' 쓴 아이

예깊생 글쓰기

by 예깊생人 2022. 10. 2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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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교회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와도 같았다.
교회에 가면 뭐든게 제공되었다. 그 당시엔 교회가 키즈카페나 다름없었다.

놀이터와도 같이 보이던 안전지대에도 나름의 금기사항이 있단 사실을 어린 꼬맹이들은 몰랐다. 특히, 내가 그 주범이었다.

강대상에 올라갔다가,
강대상 종 세게 내리쳤다가,
헌금통 뒤집어썼다가,
성가복 마구 꺼내 입었다가,
찬양 궤도 넘기다 그만 찟었다가,
할아버지 장로님들께 혼쭐이 났던 강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에서야 웃고 넘길 수 있지만 그 당시엔 꽤나 겁을 먹었다. 교회가 더이상 놀이터로 보이진 않았다.

지난 주 금요기도회에서 헌금통 모자를 눌러쓴 힙한 아들을 목격했다.

난 본능적으로 기도를 잠시 멈추고선 폰카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 사진을 담았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은채로.

헌금통을 뒤집어쓴 아이는 혼쭐이 나야 되는 줄로만 알고 살아왔던터라 꽤 오랜 시간, 내겐 영적 벽돌깨기가 필요했다. 아내가 지어준 내 별명이 '안바새'(바리새인의 줄임말)라면 말다했다.

조용한 교만덩어리, 상처 입은 율법주의자 같던 나는
아들이 교회에서 터뜨리는 돌발행동 하나하나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예수님의 말씀이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키며 스며들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오늘의 이 사진은 내 아들의 사랑스런 모습이자, 하나님 앞에서의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여기에는 복음이 있다.
여기에는 자유함이 있다.
여기에는 사랑이 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가 와있다.

아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무런 문제가 없단 사실을, 종교가 선그어놓은 블랙리스트에 들어가더라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도 된단 사실을, 하나님 앞에선 오히려 눈치 없이 사는게 복이라는 사실을, 삶을 살아갈 수록 더 찐하게 누리기만을.

헌금통 뒤집어쓴 아이는
전통에 위배되는 불경한 대상이 아닌,
은혜로 뒤덮인 사랑스런 아들일 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

그 분 안에서 종이 아닌 아들로 살자.
사랑스럽기만한 자식새끼로.

#슬기로운신학생활
#아들은나의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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