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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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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깊생人 2020. 7. 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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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정욕(Sinful desire)은 영혼을 대적하여 싸운다. 

육체의 정욕은 방어와 제어의 대상이다.

 

죄 욕구는 본능적이다.

구원 이후에도 죄 짓고 싶은 욕구는 강하게 발동한다. 

또한, 죄 욕구는 상황적이다. 

내가 속한 문화 또는 처한 상황이 죄를 부추긴다. 

죄 욕구는 영적이다. 

죄는 영혼을 거스른다. 영혼에 치명상을 입히려 한다.

 

본능적, 상황적, 영적인 죄 욕구는 

방어와 제어의 대상이다.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죄로부터 지켜야 한다. 

죄의 대표적인 세 루트는 사단, 세상, 육체다. 

이 셋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쉽사리 당해낼 재간이 없다.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내겐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성숙을 지향하라고 강권했다(딤후 2:22).

또한, 바울 자신도 매일 죽어야만 했다(고전 15:31).

성도는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어선 안 된다.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롬 6:13).

 

성도는 국가 사회 제도에 복종해야 한다(?). 베드로의 의도는 당시 로마 황제와 총독에게 그러란 말이다. 

불의한 제도와 규정에도 무작정 당하라는 말인가? 그게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벧전 2:15)

하나님은 교회의 선행을 먼저 촉구하신다. 즉, 교회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다. 

상대적 반응이나 감정적 충돌보다 소명적 태도를 견지하라는 것이다. 

선은 항상 악을 이긴다. 악의 효력은 선의 효력을 넘볼 수 없다. 죽음은 생명으로 정복하고, 악은 선으로 지배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성도는 자유인이다. 이 자유는 고삐 풀린 망아지의 이미지가 아니다. 

책임을 요구하는 자유다. 통제 안에 놓인 자유다. 성경적 자유는, 자유의 공급자가 되시는 예수님께 속해 있는 역설의 자유다. 자유가 악의 도구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매여 있는 종들이다. 

 하나님을 대하듯, 사람을 대하고, 국가를 대해야 한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임무다. 

 

나라와 사회의 법, 제도, 문화 등이 교회를 엄습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교회를 향한 정부의 모임 통제 지침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다소 편파적이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제제를 가하고 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도 교회 내 감염 통계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리라 본다. 

자,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교회의 대응이다. 여기서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의 궁극적 출처는 성경이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은, 정부의 지침을 따르라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교회로써 해야 할 선행을 지속하라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주변 이웃들을 공격하고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해야 한다. 

결과 중심의 태도가 아니라 정체성 중심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관점이 어떠해야하는지? 우리의 관심사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